
국민의힘 장외집회
'도돌이표' 정치 극장에서 우리가 진짜 찾아야 할 것
가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찌는데,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거리에 스피커를 설치하느라 바쁩니다. 2026년 10월 초, 서울 숭례문 한복판을 뜨겁게 달군 국민의힘 장외집회 소식에 뉴스창이 또 한 번 시끄러웠습니다.
“국정감사가 코앞인데 웬 길거리냐”라는 비판과 “오죽하면 거리에 나왔겠냐”라는 반론이 번개표 팝콘처럼 튀어 오르는 와중입니다.
도대체 왜 우리의 정치는 국회라는 수백억 짜리 훌륭한 건물과 에어컨, 보일러 시설을 놔두고 찬바람 부는 길거리로 자꾸 나가는 걸까요?
이번 국민의힘 장외집회 현장을 기점으로, 대한민국 정치가 빠져 있는 도돌이표 잔혹사와 이를 탈출하기 위한 선진 정치의 힌트를 유쾌하면서도 뼈때리게 짚어보겠습니다.
1. 숭례문 앞의 스피커 대전: 세 과시인가, 정권 심판인가?
지난 10월 3일 개천절, 국민의힘 지도부는 1년여 만에 대규모 거리 투쟁을 강행했습니다. 현장에서는 "이재명 정권을 심판하자", "민생과 안보가 지옥이다"라는 고성이 울려 퍼졌죠.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한 야당 의원들은 정부의 대북관, 부동산 정책, 검찰 관련 법안 등을 두고 매서운 공격을 퍼부었습니다. 모처럼 열린 이번 국민의힘 장외집회 현장은 말 그대로 보수 지지층의 결집소였습니다.
하지만 길 하나 건너편 민주당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민주당 측은 국정감사를 바로 앞둔 시점에 버스 타고 올라온 당원 출석 점검까지 해가며 열린 국민의힘 장외집회를 두고, “국민을 위한 투쟁이 아니라 장동혁 대표의 세 과시용 행사”라고 일축했습니다. 한쪽은 '나라를 구하기 위한 국민행동'이라 부르고, 다른 한쪽은 '당 대표 생존을 위한 출석 점검용 이벤트'라고 부르니, 같은 공간에서 서로 완전히 다른 장르의 드라마를 찍고 있었던 셈입니다.
비슷한 시각, 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부산으로 내려가 "2028년 총선의 주전장은 낙동강"이라며 PK 표심을 훑고 있었습니다. 한쪽은 서울 길거리에서 목청을 높이고, 다른 한쪽은 남쪽 바닷가에서 깃발을 꽂고 있으니, 국민 입장에서는 "국회 세금은 국회에서 쓰라고 내는 건데 왜 다들 출장을 가 계신가" 싶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2. '망각의 그늘'과 정치적 로맨스: 2년 전을 기억하십니까?
이번 국민의힘 장외집회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 한구석이 유독 찜찜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불과 2년 전인 2024년 말, 우리나라를 혼란의 도가니로 빠뜨렸던 '비상계엄 선포 사태'의 기억 때문입니다.
당시 헌정 질서를 위협했던 사건에 대해 성찰과 반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은데, 정작 그 계엄령의 그늘 아래 있던 정치 세력이 거리로 나와 "민주주의와 안보 수호"를 외치는 모습은 어딘가 기묘한 기시감을 줍니다.
"내가 하면 국정 견제와 민주주의 수호, 남이 하면 국정 발목잡기와 혐오 선동."
한국 정치의 이 진귀한 내로남불 공식을 보면, 마치 정당 정치인들의 머릿속에 '메모리 리셋 버튼'이라도 달려 있는 듯합니다. 여당일 때는 "야당이 길거리로 나가는 건 국정 방해"라고 호통치고, 야당이 되면 "거리가 곧 민의의 광장"이라며 플래카드를 챙깁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국민의힘 장외집회든, 과거 민주당의 장외 투쟁이든 간에 '아이돌 팬클럽 정모'와 국회의 경계가 모호해졌다는 씁쓸함을 지울 수 없습니다.
3. 얼마나 더 지나야 할까? 선진 민주주의 나라들의 해법 비교
많은 시민들이 질문합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흘러야 제대로 된 정당 정치와 국회의원을 볼 수 있는가?"
정답부터 말씀드리면, 단순히 세월아 네월아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정치가 저절로 철이 들지는 않습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정치 고도화는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와 시스템의 수술' 문제였습니다.
남의 나라 정치는 어떻게 이 흙탕물싸움을 줄였을까요?
3가지 모델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① 영국과 미국의 의회 중심 모델: "싸워도 국회 안에서 싸운다"
영국에는 '공식 야당(Shadow Cabinet)' 제도가 있습니다.
야당은 길거리에 마이크를 잡고 서는 대신, 각 장관에 대치되는 '그림자 장관'을 두고 국회 안에서 정책으로 정부를 송곳처럼 공격합니다. 미국 역시 극단적 당파 싸움이 심하지만, 국회의원 개개인이 당 지도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 투표를 하는 '의원 중심 정당' 구조가 단단히 뿌리 박혀 있습니다. 국민의힘 장외집회처럼 당 대표 한 사람의 입지를 위해 당 전체가 움직이는 구조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② 독일과 북유럽의 합의형 모델: "너 죽고 나 살자 정치는 불가능"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의 비극 이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했습니다.
거대 정당이 절대 과반을 차지하기 어렵게 만들어 놓으니, 과격한 언사로 상대방을 헐뜯기보다는 소수 정당과 대화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해야만 정권을 잡을 수 있습니다.
타협하지 않으면 정치적으로 사망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이죠.
③ 시스템화된 정당 내부 민주주의: "공천권이 벼슬이 아니다"
정치가 선진화된 국가들은 당 대표나 특정 파벌이 국회의원 공천권을 독점하지 못합니다.
상향식 공천과 객관적인 시스템을 통해 후보를 뽑기 때문에, 의원들이 당 대표의 눈도장을 찍기 위해 길거리 집회에 '출석 도장'을 찍을 이유가 없습니다.
4. 도돌이표 정치를 끝내기 위한 3가지 현실적 촉매제
결국, 개천절 숭례문 한복판에서 펼쳐진 국민의힘 장외집회는 대한민국 양당 정치가 가진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 거울이었습니다.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와 '당 대표 1인 지배 구조'가 계속되는 한, 2년 뒤든 5년 뒤든 여야가 공수만 바뀐 채 똑같이 길거리에서 스피커 대결을 벌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국회를 가지기 위해 필요한 개혁 과제는 명확합니다.
- 선거제도 개편: 사표(死票)를 줄이고 다양한 목소리가 국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비례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 공천 시스템의 상향식 개혁: 당 지도부의 '공천권 휘두르기'를 막아야 국회의원이 국민 소신껏 일합니다.
- 의회 중심주의 회복: 장외집회에 동원된 인원수로 정치적 승패를 겨루는 미개한 정치를 끝내고, 국회 상임위와 청문회에서 실력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마치며: 정치라는 극장의 진짜 주인은 관객이다
주말마다 펼쳐지는 '여야 릴레이 길거리 극장'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정치인들이 국회를 비워두고 장외로 나가는 동안, 고물가와 불안한 안보 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오롯이 국민의 몫입니다.
이번 국민의힘 장외집회를 바라보며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더 목청이 큰가"가 아니라 "누가 더 구체적인 민생 대책을 국회 테이블 위에 올렸는가"입니다.
팬덤과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가 끝나려면, 결국 냉정한 관객인 국민들이 투표소에서 엄중한 표로 경고장을 날려야 합니다.
다음에 열릴 집회는 길거리가 아닌, 국회 의사당 안의 열띤 정책 토론장이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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