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포로 한국행
'조용한 외교'와 정쟁 사이, 국익의 길을 묻다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에서 전해진 뜻밖의 뉴스 하나가 대한민국 정치권을 그야말로 뜨겁게 달구었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었죠.
우크라이나 전선에 억류되어 있던 북한 포로 2명의 신병이 대한민국으로 송환되었다는 내용이 전 세계에 생중계된 것입니다.
뉴스 스크린을 보던 우리 정부 관계자들은 순간 눈을 비벼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어라? 우리 분명히 소문내지 말고 조용히 처리하자고 약속했잖아?"라는 탄식이 절로 나올 법한 상황이었으니까요.
외교 현장에서는 영화 <영화 '신세계'>의 명대사처럼 "드루와, 드루와"를 외치며 화려하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방식이 있는가 하면, 영화 <인셉션>처럼 아무도 모르게 미션을 완수하고 사라지는 '조용한 외교'가 있습니다. 이번 북한 포로 한국행 건은 명백히 후자여야 했습니다.
쉿! 비밀이어야 했던 '조용한 외교'의 사정
외교와 안보에서 '비공개'는 단순히 깜짝 쇼를 준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특히 북한 포로 사안처럼 사람의 생명과 직결된 이슈라면 더욱그렇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사자가 제3국을 거쳐 대한민국 땅을 밟기까지의 과정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입니다. 본인들의 신원이 사전에 만천하에 공개되면 남아있는 북한 내 가족들의 안위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게다가 첩보전 영화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억류된 북한 포로의 신병을 안전하게 이송하는 과정에서 동선이 노출되면 송환 작전 자체가 수포로 돌아가거나 예기치 못한 군사적·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부는 "인도주의적 원칙에 따라 신속하고 안전하게, 그러나 소문내지 말고 조용히 처리하자"는 입장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젤렌스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언급에 대해 "아쉽다"는 유감을 표한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정치적인 셈법으로만 보면, 북한 포로 한국행 성공이라는 대형 호재를 대대적으로 홍보해 지지율 반등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국정 지지율이 아쉬운 정부 입장에서 왜 이런 꿀 같은 기회를 스포트라이트 밖으로 숨기려 했을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소소한 정략적 이익보다 당사자의 생명과 국가 안보라는 국익이 우선이었기 때문입니다.
여야의 엇갈린 동상이몽: "국익 우선" vs "북한 눈치 보기"
하지만 여의도 의사당에 이 소식이 전달되자마자 평화롭던 정국은 곧바로 거친 폭풍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여야의 반응은 차라리 다른 지구에서 온 사람들처럼 극과 극을 달렸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우크라이나 측을 향해 비공개 약속을 깨트린 것에 대한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이를 정쟁화하려는 야당을 향해 "당사자의 신변 보호와 한반도 정세를 고려한 국익 차원의 조치일 뿐"이라며 정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당사자들의 신원이 알려지는 순간 발생할 위험 요소들을 차단하는 것이 외교적 신뢰이자 인도적 보호의 핵심이라는 논리였습니다.
"외교적 신뢰를 지키고 인도적 보호의 책임을 다하는 일마저 정쟁의 표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야권은 즉각 매서운 포격을 퍼부었습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뤄진 북한 포로 송환을 떳떳하게 알리지 못하고 비공개에 집착한 이유가 무엇이냐며, "북한 김정은 정권의 눈치를 보는 저자세 외교의 극치"라고 맞섰습니다. 일각에서는 대북송금 이슈나 남북 관계의 약점 때문에 정부가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 절절매는 것이 아니냐는 날 선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죠.
이쯤 되면 북한 포로 이슈는 본래의 인도주의적 의미를 떠나, 여야 간의 거대한 대북관과 안보 프레임 대결로 변질되어 버린 셈입니다.
야당의 비판, 과연 '없는 게 나은' 걸까?
이번 사안을 바라보는 많은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깊은 답답함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사람 목숨이 걸린 민감한 외교 사안마저 저렇게 헐뜯고 정쟁으로 몰아가야 하나? 차라리 저런 야당은 없느니만 못하다"라는 분통 터지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국익을 위해 조용히 일하려는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냉정하게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의 톱니바퀴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가 꼴보기 싫다고 해서 '야당이 없는 세상'을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권력은 견제받지 않을 때 반드시 독주하게 됩니다.
설령 정부가 아무리 숭고한 선의와 완벽한 외교 전략을 가지고 북한 포로 사안에 접근했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외교적 실책이나 미흡한 소통(우크라이나와의 비공개 협의가 왜 깨졌는지에 대한 검증 등)을 누군가는 송곳처럼 지적해야만 합니다.
야당의 비판이 비록 때로는 과도하고 당리당략에 치우쳐 보일지라도, 정부로 하여금 스스로의 외교적 프로세스를 재점검하게 만드는 '외부의 거울' 역할을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쓴 약이 몸에 좋듯, 정권의 자만을 막는 가장 강력한 예방주사는 바로 야당의 매서운 눈초리입니다.
정쟁이라는 안개를 걷어내고 바라봐야 할 본질
결국 이번 북한 포로 한국행 파동의 본질은 간단합니다.
어찌 되었든 자유와 안전을 찾아 대한민국 땅을 밟게 된 두 명의 소중한 생명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이들이 우리 사회에 안전하게 정착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한다는 국가의 책무입니다.
외교적 약속이 삐걱거리며 외부에 노출된 점은 아쉬운 대목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민감한 사안이 여야 간의 자극적인 말싸움으로 얼룩져 당사자들의 신변을 위협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야당은 무조건적인 '북한 프레임'으로 덧씌우기를 멈추고 정부의 인도적 조치에 힘을 보태야 하며, 정부 역시 향후 유사한 외교적 상호 양해 과정에서 허점이 없었는지 꼼꼼히 챙겨야 할 것입니다.
뉴스 창을 끄며 바래봅니다.
정치권의 시끌벅적한 고함 속에서도, 정작 보호받아야 할 북한 포로 당사자들의 삶은 따뜻하고 안락한 대한민국의 품에서 평화롭게 시작되기를 말입니다.
국익과 인도주의라는 큰 바다 앞에서 정치적 셈법이라는 작은 웅덩이는 이제 거두어들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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