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표현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닙니다.
2013년 당시 왕양 부총리가 처음 사용했던 비유였고, 시진핑 체제 이후 강경 일변도로 변한 중국 외교에서는 사라졌던 표현입니다.
그런데 2025년, 그것도 미중 긴장이 여전히 고조된 시점에 리창 총리가 이를 꺼냈다는 건 정치적 파장이 적지 않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이 발언이 시사하는 시진핑 권력의 변화, 왕양의 재부상 가능성, 그리고 중국 외교 노선의 전환이라는 세 가지 축에서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1. 리창 총리의 ‘부부론’ 발언, 단순한 수사일까?
리창 총리는 최근 미국을 방문해 정·재계 인사들과 만났고, 그 자리에서 “미중 관계는 마치 부부와 같다. 다투기도 하지만 결국 서로가 필요하다”라는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 비유는 덩샤오핑 시절의 외교 기조인 도광양회(韜光養晦)에 가까운 톤으로, 갈등 속에서도 실리를 중시하는 유화적 신호로 읽힙니다.
동시에 이 표현은 2013년 왕양이 처음 사용했던 용어라는 점에서 정치적 함의를 가집니다.
왕양은 개혁파로 분류되며 2022년 시진핑 3 연임 체제에서 배제되었죠.
그 왕양의 표현을 현직 총리가 재소환했다는 것은 대미 메시지 전환뿐 아니라 내부 권력구도 변화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2. 왕양, 다시 돌아올까? 개혁파의 재부상 가능성
중국 정치에서 권력에서 밀려난 지도자의 발언이나 용어를 현직 고위 인사가 인용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입니다.
일반적으로 금기시되는 관례를 감안하면, 리창의 선택은 의도성이 높습니다.
가능한 시나리오를 짚어봅니다.
- 복귀 복선설: 권한 분산 움직임 속에서 왕양이 일정 역할로 재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
- 개혁파 목소리 반영: 왕양은 공청단 계열과 가까운 개혁파 인사군에 속해, 시진핑 독주 체제의 균열을 암시.
- 권력 이상설과 연동: 최근 대외적으로 제기된 시진핑 권력 이상설과 맞물려, 균형형 운영을 위한 신호일 수 있음.
요컨대, 왕양의 용어를 빌린 대미 메시지는 단순 회고가 아니라 개혁파 네트워크와의 조율 혹은 내부 견제 세력의 힘을 일부 인정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3. 위임 통치? 시진핑 권력 구도의 변화
AP통신은 “시진핑이 해외 무대에 한발 물러서고, 리창 총리 같은 충성파에게 역할을 맡기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2015년·2020년 유엔총회에 시진핑이 직접 등장했던 것과 달리, 2025년 유엔 무대에는 리창이 섰습니다.
중국 현대사에서 위임 통치는 낯설지 않습니다.
마오쩌둥은 문화대혁명 전후로 권력 위임과 회수를 반복했고, 덩샤오핑은 은퇴 후에도 군권을 통해 ‘수렴청정’을 했죠.
장쩌민 역시 후진타오 집권기에도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시진핑의 반부패 숙청으로 세력 기반이 해체됐습니다.
시진핑은 마오와 덩의 모델을 희망하지만, 경기 둔화·대외 압박·내부 피로 누적 속에서 현실은 권력 기반이 방어 국면에 들어선 모습에 가깝습니다.
위임 통치는 권력 이양이 아니라 통제의 방식을 바꾸는 조치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4. 대미 외교의 톤 변화: 전랑(戰狼)에서 ‘부부론’으로
시진핑 체제의 대외전략은 오랫동안 전랑(전사) 외교로 요약되었습니다.
강경하고 공세적인 메시지로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반도체·AI·첨단장비를 둘러싼 서방의 기술·무역 제재가 심화되면서 중국 경제는 체력 저하를 겪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부부론의 재등장은 의미가 큽니다.
‘갈등하되 단절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기술 공급망 복구·자본 접근성 확보·수출 회복 등 경제적 필요가 외교 톤을 유화적으로 견인하는 셈입니다. 즉, “늑대처럼 싸우겠다”에서 “부부처럼 다투며 공존하겠다”로, 실리 회복형 조정이 이어지는 모습입니다.
5. 4중전회: 권력 재편의 분수령
중국공산당 제20기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가 10월 20~23일 베이징에서 열립니다.
이번 회의는 시진핑 권력의 현주소를 판별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입니다.
- 권력 위임의 범위: 정책·인사·경제 운영에서 권한 분산이 제도화되는지 여부
- 개혁파(왕양) 라인의 역할: 자문·기구 대표·협치적 포지션 등으로의 부분 복귀 신호
- 대미 외교 프레임: ‘경쟁·관리·협력’의 문서화와 실무 채널 재가동 수준
권한 분산이 명시된다면 시진핑의 정치적 비용 관리로 볼 수 있고, 반대로 통제 강화가 확인되면 위임 통치는 일시적 위기관리 카드였음을 뜻합니다.
6. 무엇을 의미하나: 내부 균열 신호 vs. 전략적 조정
리창의 ‘부부론’은 두 겹의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 내부: 왕양 용어 재소환은 개혁파 네트워크와의 균형 복원 혹은 최소한의 대화 복귀.
- 대외: 미국과의 관계 관리 재개—갈등을 낮게 유지하며 기술·금융·무역 연결을 부분 복구하려는 의도.
이 둘은 상호 보완적입니다.
내부적으로는 권력 피로를 덜고, 외부적으로는 경제적 실리를 확보하는 정치·외교의 동시 조정이라 볼 수 있습니다.
맺음말: ‘부부론’의 부활이 말해주는 것
결론적으로, 리창 총리의 발언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는 ① 시진핑 체제의 불안정성, ② 왕양 등 개혁파의 재부상 가능성, ③ 대미 외교의 유화 전환이라는 세 축을 한 번에 드러낸 사건입니다.
4중전회 결과에 따라 중국 정치의 향방은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시진핑이 여전히 철옹성일지, 아니면 이미 균열이 시작되었는지—그 답은 곧 드러납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중국은 지금 실용주의적 조정을 통해 대외·대내 리스크를 관리하려 시도하고 있으며, 그 첫 신호탄이 바로 ‘미중관계 부부론’의 부활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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