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계엄을 몸으로 겪은 세대다. 1980년대 초 대학을 다녔고, 교정에 울려 퍼지던 군홧발 소리와 최루탄 냄새를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계엄’, ‘내란’, ‘군 투입’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심장이 먼저 반응한다.
이번 윤석열의 1심 무기징역 선고를 지켜보며, 나는 다시 그 시절로 되돌아갔다.
법원은 12·3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군 투입을 국헌문란 목적의 내란으로 인정했다.
군과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고, 국회의 권능을 침해하려 했으며, 민주주의 핵심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했다고 판시했다.
그럼에도 형량은 사형이 아닌 무기징역이었다.
나는 이 지점에서 멈춰 섰다. 과연 이것이 역사 앞에 충분한 판결인가.
법원의 판단: 내란은 인정, 그러나 사형은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은 윤 석열이 국회와 선관위 등에 군과 경찰을 투입하고, 주요 정치인을 체포해 헌법기관 기능을 마비시키려 한 점을 인정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오판이 아니라,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 한 시도라고 보았다.
동시에 재판부는 장기독재를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특검 주장 일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물리력 행사를 자제하려 했던 점, 국헌문란의 시간과 정도, 고령 등을 고려해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특검은 사형을 구형했다.
전두환·노태우 단죄보다 더 엄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의 결론은 ‘무기징역’이었다.
80년대의 기억, 그리고 5·18의 그림자
나는 5·18을 뉴스 화면이 아닌, 공기의 무게로 기억하는 세대다.
교실에서, 거리에서, 술자리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했고, 계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피부로 배웠다.
계엄은 단지 법률 용어가 아니다. 그것은 일상의 정지, 표현의 침묵, 공포의 제도화였다.
그래서 나는 이번 판결을 보며 이런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과연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는가.
전두환은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집행되지 않았고, 결국 사면됐다.
그 ‘관용’의 결과가 오늘의 현실로 이어진 것은 아닌가. 국가 권력을 쥔 자가 다시금 계엄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 수 있었던 배경에는, 단죄의 미완이 자리 잡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내란은 실패했기 때문에 가벼워질 수 있는가
일각에서는 “실패한 내란”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나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실패는 시민과 국회의 저항 덕분이었다.
의도가 있었고, 실행이 시작됐으며, 군이 움직였다.
국회가 마비될 뻔했고, 민주주의는 벼랑 끝에 섰다.
결과적으로 권력 장악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그 책임이 가벼워질 수 있는가.
과거 왕조 시대에 역모는 9족을 멸하던 중죄였다.
물론 오늘날 우리는 법치국가에 살고 있고, 연좌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만큼 내란은 국가의 존립을 뒤흔드는 중대한 범죄라는 역사적 인식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그 주체였다면, 그 무게는 더욱 무거워야 하지 않겠는가.
사형 요구의 논리
나는 감정만으로 사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 첫째, 헌정질서를 무너뜨리려 한 행위는 민주공화국의 근간을 침해한 범죄다.
- 둘째, 최고 권력자가 주도한 내란은 재발 가능성 차단이라는 측면에서 엄정한 단죄가 필요하다.
- 셋째, 과거 단죄의 미흡이 반복의 빌미가 됐다는 역사적 교훈이 있다.
형벌은 응보이면서 동시에 예방이다.
훗날 또 다른 권력이 유혹을 느끼지 않도록, 분명한 선을 그어야 한다.
나는 그 선이 사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 무기징역 선고에 아쉬움과 불만을 느낀다.
법과 역사 사이에서
물론 법원은 법리에 따라 판단했을 것이다.
치밀한 계획성이 완전히 입증되지 않았고, 물리력 사용이 제한적이었다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사법부는 감정이 아니라 증거와 법률로 말한다. 그 점은 존중해야 한다.
그러나 역사는 또 다른 법정을 가진다. 그것은 국민의 기억 속 법정이다.
나는 그 법정에서 이번 판결이 충분한가를 묻고 있다.
내게 무기징역은 엄중하지만, 결정적 메시지를 남기기엔 부족해 보인다.
항소심과 우리의 과제
윤석열 측은 항소를 예고했다. 특검 역시 양형에 아쉬움을 표했다. 법적 공방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법정 밖에서도 논의는 이어져야 한다.
우리는 계엄이 무엇인지, 내란이 민주주의에 어떤 상처를 남기는지 다시 공부해야 한다.
나는 사형을 요구했던 사람으로서 이번 판결에 불만을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한 시민으로서, 판결 이후의 사회를 고민한다.
중요한 것은 복수가 아니라,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와 문화를 다지는 일이다.
마치며 – 다시는, 이라는 다짐
80년대 대학생이었던 나는 민주주의가 공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배웠다.
피와 눈물, 그리고 긴 시간의 투쟁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내란이라는 단어에 민감하다.
그리고 그 책임이 끝까지 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이번 무기징역 판결은 하나의 결론이지만, 나에게는 질문으로 남는다.
우리는 과연 충분히 단죄했는가. 훗날 또 다른 권력이 같은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는 어떤 기준을 세워야 하는가.
나는 여전히 사형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역사에 대한 최소한의 경고이자,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최종 판단은 사법 절차 속에서 내려질 것이다. 그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다시 한 번 다짐한다.
다시는, 계엄이 일상의 언어가 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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