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2월,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예상치 못한 주제 하나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바로 ‘환단고기(桓檀古記)’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교육부 및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 자리에서 환단고기를 "문헌 아닌가?"라고 언급한 것이 발단이었고, 이에 대해 야권과 학계, 언론,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뜨거운 공방이 이어졌습니다.
단순한 역사서 하나의 진위를 넘어, 이번 논쟁은 우리 역사학계의 구조와 철학, 그리고 식민사관의 잔재에 대한 성찰로까지 확장되고 있습니다.
본 포스팅에서는 환단고기를 둘러싼 주요 논란과 함께, 그것이 의미하는 구조적 한계와 역사 인식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자 합니다.
1. 논란의 시작: 대통령의 ‘환단고기’ 발언
2025년 12월 12일, 이재명 대통령은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환단고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환빠'라고 비하하지 않느냐"며 문제를 제기했고, 이후 "환단고기는 문헌이 아닌가?"라는 발언으로 공식석상에서 환단고기의 학문적 지위를 언급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는 “환단고기가 역사라면 반지의 제왕도 역사”라는 말을 남기며, 환단고기는 위작이며 역사적 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했습니다. 이게 사물과 학문에 대한 이준석의 관점의 한계라 생각합니다.
2. 환단고기란 무엇인가?
환단고기는 1979년 이유립이라는 인물에 의해 출간된 책으로, 내용상으로는 독립운동가 계연수가 1911년에 쓴 책을 후대에 공개한 것이라 주장합니다.
책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 단군 이전에 '환국'이라는 국가가 존재했다.
- 한국 고대사는 시베리아, 중앙아시아까지 뻗은 대륙적 역사였다.
- 기존 한민족 기원론과 삼국사기 중심의 사관은 축소·왜곡된 것이다.
그러나 주류 역사학계는 환단고기를 ‘위서(僞書)’로 평가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1911년 이전 사료에서 원전이나 언급이 전혀 발견되지 않음
- 문체 및 단어 사용이 20세기 근대 일본식 한자어와 유사함
- 고고학적·언어학적 실증 자료와 일치하지 않음
3. 식민사관은 정말 청산되었는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우리 역사학계가 환단고기를 왜 그렇게 철저히 배척하는가?
그 핵심에는 여전히 ‘식민사관’의 잔재가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식민사관은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 등을 통해 체계화된 역사관으로, 조선의 역사를 중국에 의존하고 정체된, 미개한 민족사로 규정했습니다.
해방 이후, 일본 유학파와 식민사관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이 학계를 주도하면서 이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는 비판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 한사군(낙랑군)이 한반도 평양 지역에 있었다는 해석
- 삼국 시대 영토가 중국 대륙에 있었다는 설에 대한 배제
- 재야 사학계의 학문적 접근 자체를 비주류로 간주하는 태도
이 모든 것이 강단사학의 폐쇄성과 식민사관의 연속성으로 해석되는 것입니다.
4. ‘강단사학 vs 재야사학’의 대립 구조
한국의 역사학계는 오랫동안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으로 나뉘어 왔습니다.
강단사학은 대학, 학회, 정부기관 중심의 제도권 역사학을 의미하고, 재야사학은 제도권 밖에서 활동하는 민간 연구자 중심의 역사해석을 뜻합니다.
문제는 재야사학의 주장이 아무리 흥미롭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더라도, 정식 검토의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입니다.
- 학술지 게재 불가 - 학계 연구비 및 국고 지원 배제 - 언론과 미디어에서 '비과학적', '유사 역사학'으로 낙인
이는 곧 ‘사실 여부’ 이전에 ‘접근 자체를 막는 구조’로 이어지며, 환단고기 역시 그 희생양이라는 인식이 일부 국민들 사이에서 존재합니다.
5. 환단고기의 가치는 '사실'이 아닌 '담론'일 수도 있다
환단고기를 역사서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는 주류 입장은 타당한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그 자체로 식민사관에 대한 문제제기, 역사주체성 회복, 대안적 서사 제공이라는 측면에서 담론적 가치가 존재합니다.
마치 민중사관이 지배 엘리트 중심의 역사관을 비판하며 제시되었듯, 환단고기도 제도권 사학의 인식 구조를 흔드는 ‘문학적 저항’일 수 있다는 해석입니다.
즉, 환단고기를 단순히 ‘진짜냐 가짜냐’로만 접근하기보다, ‘왜 이런 책이 나왔는가’, ‘왜 여전히 믿는 사람이 많은가’라는 질문이 더 중요합니다.
6. 앞으로의 과제: 열린 역사학, 닫힌 패러다임 넘어서기
이 논쟁이 던지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학문은 질문할 자유를 전제로 해야 합니다.
단지 ‘틀렸기 때문에 배제’가 아니라, ‘검증 가능성을 열어두고 공론장에서 토론’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식민사관을 청산하고 진정한 역사 독립을 이루기 위해서는:
- 다양한 사관과 해석을 포용하는 학문적 개방성
- 강단-재야 간 교류와 상호 검증 시스템 구축
- 사료의 범위와 정의에 대한 철학적 재정립
- 고대사에 대한 자주적 연구기관 및 인재 양성
결론: 환단고기 논쟁은 역사 인식의 거울이다
환단고기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도, 무조건 배척하는 것도 올바른 태도는 아닙니다.
이 책을 둘러싼 논쟁은 결국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얼마나 자유롭게 말하고 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진영 싸움이 아니라, 더 나은 역사 인식을 위한 열린 질문과 겸손한 태도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식민사관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주 역사학으로 가는 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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